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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는 2024년 벽산희곡상을 받았습니다. 벽산희곡상은 작가가 연출가를 선택하게 되어 있고, 김윤식 작가가 연출가로 저를 지목하면서 <묵티>를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김윤식 작가와는 세월호연극제 때 <고인돌 위에 서서>라는 그의 희곡을 공연하면서 처음 만났습니다.

김윤식 작가의 희곡은 대사가 독특합니다. 녹취를 풀어놓은 것 같은 구어체 대사들인데, 배우들이 처음 리딩할 때는 뭔가 문법에도 안 맞고 부사나 조사가 반복되다 보니까 약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막상 공연하게 되면 신기할 정도로 생생한 입말이 됩니다.

그런 대사들로 진행되는 일상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쑥 끼어들곤 합니다. 누구나 종종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순간들일 텐데도 그걸 무대에서 만나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고인돌 위에 서서>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수몰 지역 현장에서 갑자기 수천 년 전의 고인돌이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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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는 연근밭을 배경으로 이주민과 정주민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얘기입니다. 최근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극이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주민이 우리 사회에 중요해지는 만큼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묵티>에서는 이주민과 정주민을 갈등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로 그려집니다. 연근 농사를 짓는 귀농한 정주민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들과 협력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이런데, 누가 그들을 적대관계라고 말하는 걸까요? 희곡에서는 정주민의 입을 통해 말합니다.

“상추나 배추 농산물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잘 모르는 도시 사람들, 그리고 원칙만 앞세우는 윗대가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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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티’는 재난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아직 자신을 애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 친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여럿이고 성별이 다른데도 이름은 똑같이 ‘묵티’입니다. ‘묵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해방’이라는 뜻으로 지금도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하거나 영향을 받은 언어권에서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묵티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애도의 부름으로 나타났지만, 자신들을 변호하는 대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인간 속으로 들어가서 인간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인간이 되라는 당부가 이주노동자나 난민이 인간 취급을 받게 되면 해방이 된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비 난민, 비 이주노동자에게 인간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거기에서 벗어나 해방을 이루라는 반어법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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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해 생각하려는 시도는 늘 대상화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김인정은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라고 말하면서 타인에 대한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 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극들이 최근에 와서야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이 직접 공연하기도 하지만, <묵티>처럼 비당사자가 인터뷰나 관찰을 통해 기록하고 전달하고 중개하면서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