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티(Mukti)는 산스크리트어로 ‘해방’을 뜻한다. 해방, 그것은 흔히 자유와 같은 뜻을 지닌 말로 여겨지지만, 해방에는 더 복잡한 정동적 흐름이 관여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인간 세계에 순응한 원숭이 ‘빨간 페터’는 동물 상인에게 잡혀 우리에 갇혔을 때 자유 대신 출구를 원했다고 말한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관계 없이, 저는 그 밖의 다른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지라도 말입니다.” 1)
- 프란츠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자유란 어디에나 있다. 철창살 안에 갇힌 동물에게조차도 눈을 깜빡이고 숨을 들이마실 자유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빨간 페터는 자유가 아닌 출구를 원했다. 자신을 가두는 실제적인 탄압의 장소인 철장에서 나가게 해줄 출구를. 그 출구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곳에 또 다른 출구가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출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묵티, 해방이란 탄압의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지로 나아가게 하는 바로 그 출구를 이름하는 말이다.
해방, 출구를 통해 나아간 세계는 고요하지 않다. 탈출이란 텅 빈 공중으로 떠올라 혼자되는 것이 아니라, 출구의 안팎을 감싸 안은 세계 속의 수많은 존재와, 새롭게 알게 될 존재들 혹은 이미 알고 있던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다시 그러나 다르게 뒤섞이는 일이다. 탈출하는 존재는 소란스러운 세계를 휘젓는 또 다른 소란스러움이 되어 세계와 함께, 세계를 향해 휘말린다.
휘말림은 능동과 수동,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운동이다. 휘말림은 서로 끌어당기고 끌려 들어가는 관계의 운동이며,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있는, 상호 연루된 두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일어나는 과정이다. 인류학자 서보경은 『휘말린 날들』에서 휘말림의 전 과정은 “생명이라는 존재 형식의 생동성(vitality)” 2) 이며,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연결하는 매듭의 전체를 완전히 가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이미 이어져 있” 3)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휘말림 속에서 우리의 신체는 서로를 향해 열리고, 그 열린 틈을 따라 새로운 대지를 생성하는 힘이 쏟아진다. 해방이란 이런 휘말림의 운동 속에서 발생한다. 결국 해방이란 억압의 틀에 균열을 내고 새어 나오는 것, 함께 뒤얽히며 새롭게 살아가는 힘을 발하는 것이다.
커다란 사건, 혁명적인 변화만이 휘말림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휘말림은 매일매일의 접촉 속에서, 눈빛과 몸짓, 말과 침묵 속에서 부단히 일어난다. 삶이란 그렇게 휘말리게 하고 휘말려 가며 나아가는 걸음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살아있다는 말, 살아간다는 말은 이미 이 세계에,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 조금씩은 휘말려 있다는 뜻이다.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그러한 휘말림 속에서 다음 걸음을 만들어 내는 것, 나를 휘감은 중력과 바람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끌어안고 걸어 내는 과정이다.
2)서보경,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반비, 2023, 26쪽.
3)같은 글, 340쪽.